서론
환승연애3가 얼마 전 끝이 났다. 처음엔 그저 오락적인 요소로 시청하기 시작했었던 콘텐츠였다. 그런데 함께 보며 연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친구와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래서 환승연애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들과 내 생각을 정리하여 보려고 한다. 평소 나는 연애뿐 아니라 모든 사람과의 관계, 만남, 이별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만의 가치관을 정립하는데 관심이 많은 편이다. 나와 비슷한 고찰을 즐긴다면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추천해 주고 싶다. 흔한 사람들의 만남부터 이별까지를 철학적으로 해석한 내용의 책인데 상당히 흥미롭게 봤던 기억이 있다. 어찌 되었든 보다 보니 그저 오락적인 요소로 가볍게 만은 보지 않았던 콘텐츠였고, 이 포스팅을 통해 내 생각을 텍스트로 한번 정리해보려 한다.
관계
인간관계라는 것은 아마 모든 존재의 관계를 통틀어 가장 통일하여 정의하기 힘든 것이 아닐까 싶다. 정의라는 것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고, 인간관계라는 것은 결국 사람마다 다르게 정의되지 않을까. (물론 내가 인문학을 공부해본 적이 없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환승연애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어떤 관계인 걸까. 이미 이별한 관계라면 왜 그들은 꼭 매화마다 재회하는 커플이 꼭 한 쌍씩 있는 것일까.
이전에 재밌게 보았던 드라마 ‘연애의 발견’의 명대사 중 이런 대사가 있다.
“우리 헤어지자. 이제는 제대로 헤어지자. 나는 왜 헤어졌는지 몰라서 너랑 못 헤어졌던 거고, 너는 계속 나 미워했잖아. 미워하는 동안은 아직 헤어진 게 아니야. 한여름, 행복하게 잘 지내. 이 말이 진심이라서 다행이야.”
10년도 더 된 드라마인데도 감명 깊게 들었던 대사여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고, 환승연애의 취지 중 하나를 가장 잘 표현한 대사라고 생각한다. 정말 이별을 하려면 남아있는 감정이 없어야 한다는 말을 아름답게 표현한 대사가 아니었을까. 정말 이별을 했다면 상대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래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그들은 완전한 이별이 아닌 헤어지는 중이었을 수도 있다.
이별
관계를 이야기할 땐 보통 만남으로 시작해서 사랑하고 이별하는 순으로 이야기하기 마련이다. 환승연애의 매력 중 하나는 이 관념을 깨고 이별부터 시작한다. 이별하고 새 사람을 만나는 순서다. 이 글도 그 포맷을 따라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보려 한다.
보통 연인이 되면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오래 교제를 하다 보면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서로에 맞춰지게 된다. 그렇기에 이별을 하게 되면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아는 남이 된다. 이런 점은 환승연애의 몰입도를 높여주는 요소가 된다. 누구보다 상대를 잘 알지만, 선을 지켜야 하는 남이 되어버린 옛 연인들의 모습을 제 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상황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나도 그들과 함께 공감하고 슬퍼하며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연애를 시작하면 그 사람이 내 세상이 되듯, 이별을 하면 세상을 잃는 기분이 아닐까.
예전 모 드라마(어떤 드라마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의 명대사였던 구절을 패널인 김예원이 중간에 이야기한 적이 있다.’ 사랑한다의 반대말은 미워한다가 아니라 사랑했었다.’라는 구절이 나는 참 인상 깊었다. 어떠한 감정이라도 남아있다면 그건 미련이라는 이름으로 완전히 놓아주지 못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연인과 헤어진 후 감정이 정리되고 완전히 이별을 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전 연인을 떠올렸을 때 아무렇지 않게 추억하는 게 이별이라고 생각한다. 대판 싸웠든, 누군가 잘못을 했든, 어떻게 상황이 잘 안 맞아 이별하였든, 어찌 되었든 한 때 좋았고 사랑했던 사람이니까. 이런 생각이 들고 아무렇지 않다면 그게 비로소 이별일 것이다.
만남
누군가와 관계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만남이 있어야 한다. 말 그대로 관계의 시작인 만남은 어떨까. MBTI E의 외향적인 성격인 나에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새로 만나게 될 그들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한 사람일 수도 있고, 나와는 반대의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내 경험의 폭이 넓어지고 생각의 깊이가 깊어짐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환승 연애도 이런 면에선 같은 결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X에게선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다른 상대에게서 볼 수 있을 것이고, 나는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다른 상대의 X가 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을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했던 경험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난 다양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스로 이런 우물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좋아한다.
환승연애의 그들 또한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그들과 데이트를 하면서 자신이 몰랐던 연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여기서 자신의 X에게 못 해줬던 것들을 후회하며 재회를 하는 사람, X와는 다른 스타일의 매력에 새로운 만남을 하려는 사람, 다양한 군의 사람들이 있다. ‘환승 연애’라는 단어가 주는 자극적인 거부감 때문에 부정적으로 비추어질 수 있겠지만, 그들은 완전히 이별을 하든 하지 않았든 이별 중에 있는 사람들이고, 그들의 선택에는 그들의 수많은 고민들을 거친 결정이었을 것이다. 2시간가량의 16부작, 대략 30시간 조금 넘는 편집된 방송본으로 그들을 접한 우리의 기준으로 어떻게 감히 그들을 평가하겠는가.
그들의 만남에는 그들만의 여러 방식과 깊이가 있을 것이다. 연애 기간이 길다고 그 관계가 마냥 깊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며, 연애 기간이 짧다고 그 관계가 마냥 가볍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랑
이 포스팅의 챕터 중 가장 다루기 힘든 주제가 아닐까 싶다. 함부로 내가 정의 내리기조차 부담스러운, 사람마다 모두 다르게 생각할 것이고, 다른 주제보다 개개인이 생각하는 범위가 넓은 주제라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내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해서 한번 끄적여보려한다.
솔직하게 말해 나는 아직 책이나 영화에 나오는 그런 대단한 사랑은 해본 적이 없다. 만약 내 여자친구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난 그렇다. 에리얼처럼 내 목소리를 버릴 수도, 로미오처럼 독약을 마실 수도, 베르테르처럼 자살할 정도로 격정적인 사랑은 해 본 적은 없다. (이런 사랑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감정을 경험해 봤다는 것 하나만으로 나로선 굉장히 부럽다.)
하지만, 내게 중요했던 가치를 상대를 위해 양보한다든지,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상대를 위해 감수한다든지, 나만의 루틴이 망가지더라도 상대와 함께한다든지 등의 행동이 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계산적인 에고이스트에 가까웠던 내가, 내가 생각해도 비효율적인 행동을 상대를 위해 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행동이 싫지 않다면 그게 사랑이 아닐까. 이게 내가 정의하는 내 사랑의 방식이다. 그리고 지금 그런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예전에 인터넷에서 읽었던 글귀 중 감명 깊었던 글귀가 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각자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잘해주려고 한다. 아버지는 차를 태워주려고 하시고 와이프는 밥 먹었는지 궁금해한다. 나는 교통수단과 식사가 별로 안 중요한 사람이지만 그것이 애정의 표현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방식을 가장 잘 표현한 글귀라서 기억에 남아 스크랩했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사랑 표현의 방식은 분명 다를 것이다. 사랑한다면 이렇게 해야 해 하고 정해진 규정 따위는 없다. 그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애정표현을 이해하며 서로 사랑하는 게 가장 건전하고 올바른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결론
쓰다 보니 콘텐츠에 대한 리뷰는 하나도 없는, 환승연애라는 플롯만 활용한 관계, 만남, 이별, 사랑에 대한 내 가치관을 정리한 에세이가 되어버렸다. 오히려 그런 글이 되어서 쓰고 나니 더 후련하고 만족스러운 것 같다. 뭘 그렇게 할 이야기가 많았는지 내가 쓴 블로그 포스팅 글 중에 가장 긴 글이 될 것 같다.
환승연애3을 보고 쓴 글이지만 시즌1도 시즌2도 비슷한 결의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보지는 않았다.) 앞으로 나올 시즌4도 시즌5도 그들의 서사가 달라질 뿐이지 그들의 감정을 관통하는 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지 않을까. 그게 이 환승연애라는 콘텐츠가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아마 이 긴 글을 읽는데 적어도 5분은 걸렸을 것인데, 나의 고찰에 그대들이 공감하여 감명받았을지, 좁은 시야에 갇혀있는 글이라 느꼈을지, 어땠을지는 잘 모르겠다. 위의 ‘만남’ 챕터에서 말했듯 나는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 대화하길 좋아한다. 그래서 난 묻고 싶다.
그대들이 생각하는 관계, 만남, 이별, 사랑은 어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