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신경숙 작가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 의 첫 구절이다. 다소 파격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어머니 생각에 울컥하게 하기 충분한 책이다. 학생 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설 연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오랜만에 집어 읽기 시작했다. 책을 펴고부터 책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다가 책을 다 읽고 나선 어머니에 대한 나의 무심함에 울컥했다. 책을 덮고 나면 소설 속 수화기 줄을 타고 내려오는 엄마의 실종을 전해 들은 딸의 눈물은 고스란히 우리의 것이 된다. 울컥해서 벅차올랐던 감정을 지금 생각해보면 낯부끄럽지만, 그만큼이나 내게 감명 깊은 책이었다.
독특한 인칭대명사의 사용
이 책은 화자를 독특한 방법으로 표현했다. 그러니까, 시점의 기법이 특이하다. 큰딸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1장에서는 '너' , 큰아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2장에서는 '그' ,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3장에서는 '당신'으로 표현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시점의 지칭법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감으로써 이야기 속 그들의 후회와 자책은 오롯이 책을 읽는 나의 몫이 된다. 우린 책을 읽으면서 '너'도 되고 '그'도 되고 '당신'도 되면서 세 가지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4장에서는 엄마의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평생을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살아온, 그들이 주인공인 이야기 속에서 항상 조연만 해 오셨던 엄마가 주연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한다. 그녀는 처음부터 가족만 바라봤던 엄마가 아니었다. 한 가족의 딸이었고,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에게 사랑을 받던 한 여자였다. 4장에서는 한 가족의 엄마로만 살아왔던 세월에 대한 착잡한 회한을 토로하는 엄마의 이야기다. 하지만 가족들의 무심함을 질책하려는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미안해만 한다. 그게 어머니다. 한없이 퍼주고도 더 퍼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그게 어머니라는 사람이다.
우린 언제부터 어머니를 잃어버렸는가
어머니들에게 우리들은 세상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당신들의 인생을 포기하고 자식들에게 헌신하신다. 항상 우리를 위해 자신의 삶을 모두 양보하시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 역시 사범대를 졸업하시고 선생님이 될 수 있었음에도 나와 내 동생 때문에 꿈을 포기하셨다. 그들끼리 모여 담소를 나눌 때도 늘 주제는 우리들이다. 우리를 삶의 이유로 여기시는 그들에게 우리는 늘 바보처럼 무심했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나 역시 친구들과 돈 모아서 외국으로 여행 가보겠다는 생각만 해봤지, 어머니와 해외여행 가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여행은 고사하고 같이 집 앞 공원에 산책 한 번 가 본 적 없었단 생각에 후회와 죄스러움이 물 밀듯 밀려왔다.
보통 대학생이 되거나 사회초년생이 되면 어머니 곁은 벗어나 자취를 하게 된다. 여기서 그들은 20년 만에 비로소 어머니의 부재를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청소부터 빨래까지, 우리는 그러면 안 되지만, 당연히 어머니께서 해 주시던 거라 생각했던 집안일이라는 것을 자기 스스로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진다. 그리고 그게 굉장히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우린 우리밖에 모르시는 어머니를 우리 스스로 그저 집안일 대신 해주는 사람으로 전락시켜 버린 거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는 얼마나 어머니께 무심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우리 스스로가 멍청했었는지를 다시금 되돌아볼 수 있다.
사실 우리 대부분이 그렇다. 누구도 나는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늘 주위에 있어 소중함을 모르는 공기처럼 항상 내 옆에 있어주어 그 감사함을 모르고 살아간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드러나지만, 소설 속 가족들은 엄마를 잃어버리기 전에 엄마를 이미 잊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엄마의 실종을 계기로 비로소 그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 또한 어머니를 그냥 잊어버린 채로 사는 것은 아닐까.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매번 어머니께 기대는 동시에 밀어내 왔다. 소설을 읽는 내도록 이 책은 나를 쉴 새 없이 다그치고 또 몰아쳤다. 어쩌면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우리들에게 그런 일침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를 다시 기억하고 모셔오라고. 작가는 책을 읽는 바로 우리에게 엄마를 부탁한 것이다.
결론
우린 어머니를 잊어버린 채로 살고 있진 않을까. 이미 잊혀버렸지만 책의 가족들처럼 잃어버리기 전까지 우린 어머니를 잊어버린 것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살 수도 있다. 이 책을 처음 펴서 제목이 적힌 장을 넘기면 차례도 나오기 전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언제까지나 내 옆에 있어 줄 것만 같은 어머니도 자연의 섭리에는 거스를 수 없을 것이다. 아직은 생각하기도 싫은 이야기지만 어머니의 손등에 핀 검버섯을 보며 늘 한결같았으면 하는 어머니인데, 내가 커 감에 따라 어머니도 늙어간다는 생각에 글로 형용할 수 없는 이상 한 기분이 들었다. 이 책에 적힌 글귀처럼 내가 사랑할 수 있을 만큼, 당신께 받은 그만큼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한번 사랑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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