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개봉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이제서야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팬이지만 최근 이것저것 일이 많아 미루다가 이번에 프로젝트가 끝나고 일주일간 받은 휴가를 활용하여 드디어 봤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영화가 끝난 뒤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기까지 멍 때리게 만들며 많은 생각에 잠기게 만든 영화이기에 후기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는 이야기는 SNS를 통해 익히 들어서 각오는 하고 봤지만 굳이 따지자면 나는 호에 가까운 것 같다. 확실히 영화에 담은 감독의 메세지를 해석하기엔 난해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꽤나 재밌게 봤고, 많은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제목처럼 대단한 삶의 지혜를 얻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영화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 기록해 놓기 위해 이 포스팅을 남기려 한다.
보통 나는 스포를 싫어해서 블로그에 포스팅하는 리뷰 글에는 스포성 스토리를 남기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스토리에 대한 언급이 없이는 후기를 남기기 어려울 것 같아 혹시 스포를 싫어하는 독자를 위해 미리 주의를 하고 시작을 하겠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서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그가 전범국의 군수업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실제로 많은 작품에서 그는 전쟁을 배경으로 삼았고, 전쟁을 부정적으로 그리는 모습이 많다. 그래서 이 작품이 그의 자서전이라는 평이 많다. 그는 전쟁을 부정적으로 보지만 그로 인해 부유한 유년시절을 보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와 있었던 부자간의 갈등 역시 이 작품에서 넌지시 던지고 있다.
일본의 군국주의를 증오했지만 그로 인해 자신이 있을 수 있었던 하야오의 모순적 모습을 그는 이 작품에 담고 싶었다고 느껴진다.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떠난 이세계의 질서도 결국 현실과 다를 것 없었고,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이세계의 창조주가 된 마히토의 큰할아버지 역시 무너져가는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후계자로 마히토를 데려온다. 이 모습이 난 마히토 뿐 아니라 그의 큰할아버지에도 하야오가 본인을 담지 않았나 싶었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세계를 애니메이션 작품을 통해 세계를 구축하였고, 이 또한 그가 말하고 싶었던 완벽한 유토피아는 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세계를 유지 혹은 재건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함에도 이미 이 세계가 무너져가는 것을 알고 있는 그를 비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가치관을 이어 지브리에서 작품 활동을 할 후계자가 없는 현재 상황에 대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것까지는 내 과대해석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작품이 미야자키 하야오를 포함한 지브리의 마지막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미야자키 하야오가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브리라는 유토피아는 무너져가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세계에서 작은 돌조각을 들고 현실로 돌아 나온 마히토의 모습을 통해 더 이상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세계에 빠져있지 않고, 현실 속에서도 그 세계를 잊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 또한 엿볼 수 있다.(또다시 은퇴 번복작이 나올지도..?) 확실히 하야오의 삶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본다면, 이 작품은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이야기하고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지를 물어보는 작품이란 점을 느낄 수 있다.
없는 장소라는 뜻을 가진 이상적인 세상 유토피아
마히토의 큰할아버지는 현실을 떠나 생과 사의 중간 세상의 창조주가 된다. 하지만 그가 현실을 부정하며 만든 유토피아 역시 모순투성이인 점들이 많다. 그 이세계의 여러 요소들을 통해서 하야오는 일본의 전체주의와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모습 또한 보여준다.
펠리컨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이세계에 들어오게 되었고, 먹이가 없는 이세계를 벗어나려고 노력해보았으나 결국엔 답을 찾지 못하고 와라와라를 잡아먹게 된다. 우리는 새 생명이 되려는 와라와라를 잡아먹는 그들을 과연 완전한 악으로만 볼 수 있을까. 살생을 야기하는 전쟁을 일으킨 그들 또한 자신들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지 않았을까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다수의 와라와라를 살리기 위해 소수의 와라와라를 태워 죽이는 히미를 우리는 완전한 선으로 볼 수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위선은 아닐까. 입체적인 캐릭터들을 통해 선과 악의 경계선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이런 완전한 선도 악도 없다는 모순적인 생 사이에 유일한 순수 악이 있는데 바로 앵무새라는 요소이다. 앵무새는 창조주에 대한 반란을 통해 전쟁을 일으켜 기존의 삶도 이루지 못하고 세계가 무너져 버리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감독은 일본의 군국주의를 비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하야오가 캐릭터들을 통해 어떤 메세지를 던지고 싶어했든지 간에 전쟁은 용서받지 못할 악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작품 속 마히토의 큰할아버지가 현실에서 도피해 만든 유토피아 또한 살생과 탐욕의 연속이며, 그가 속해있는 정원을 제외한 곳은 엉망으로 일그러진 세상이었다. 유토피아는 이상적인 세계를 묘사하는 반면 그 어원은 그리스어로 없는 장소를 뜻한다는 점에서 작품 속 세계와 가장 유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포스트에서 이세계를 표현함에 있어 가장 많이 차용하고 있다.) 그가 작품에서 표현한 신에게 도전하려 하고,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려는 앵무새의 모습이 인간의 그것과 유사하지 않을까.
그들의 선택과 따라오는 책임
작품의 마지막 히미가 했던 선택은 몇 초 되지 않는 짧은 씬이었지만 마지막까지 기억에 남았다. 그녀는 죽는 건 괜찮다며 너를 낳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말한다. 본인의 아픔과 죽음을 알지만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마히토를 위해 자신의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 솔직히 이 장면에서 굉장한 감명을 받았다. (히미가 매력적인 캐릭터로 묘사되어 그럴 수도 있고.. 히미의 성우가 아이묭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작품 전반적으로 어둡고 넓은 범위를 묘사하는 요소들과 메세지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따뜻한 장치라서 그럴 수도 있다. 결국 다른 시간의 평행 우주 속 그녀의 선택을 통해 마히토가 태어났고 이 모든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다.
그에 비해 마히토의 선택에 대한 결과는 없다. 마히토는 자신의 큰할아버지가 창조주인 이세계의 후계자로서 선택을 외면하고 현실로 돌아온다. 다만 이세계의 돌조각을 들고 와 그 기억은 온전히 갖고 현실로 돌아온다. 히미의 선택에 대한 결과가 작품 속에서 보여지는 것과는 상반되게 마히토의 선택에 대한 결과는 작품 속에서 다루지는 않는다. 그치만 선택에 대한 책임을 히미가 보여줬듯이 그가 기억을 갖고 현실로 돌아온 것에 대한 책임은 마히토 스스로가 가장 잘 알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머니에서 (아마 그 돌조각일 거라 추측되는)무언가를 꺼내보는 장면은 그가 어떻게 살 것이라는 다짐을 하는 모습을 표현한다.
마히토가 어떻게 살게 될 것인지는 작품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지 않아 아무도 모르지만, 그게 어떤 선택이 되었던 어떤 책임이 따를 것이고, 그는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역시 어떤 선택을 하던 그에 따른 책임이 결과로 따라올 것이다. 하야오가 돌고 돌아 결국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은 주제는 이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많은 세월을 살았다기엔 나는 아직 젊지만, 그 세월을 살아가며 내가 했던 무수한 선택들과 그 선택에 대한 결과들을 봐 왔던 나로서, 아니 우리 모두가, 과거의 선택과 그로 인한 결과를 통해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결과를 본 선택들도 많고, 아직 결과를 보지 못한 선택들도 많지만, 그 책임은 오롯이 나의 것이고, 삶이란 더 나은 선택을 위한 무수한 선택들의 반복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많든 적든 그들 현재의 평생동안 해온 선택은 모두 다를 것이며, 결과에 대해 후회를 했든 옳다고 느꼈든 그 선택의 경험은 그들을 성장시킬 것이다.
‘너만의 탑을 쌓아가라 풍요롭고 평화로우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거라’라는 마히토의 큰할아버지의 대사는 내가 생각하는 이 작품의 주제를 관통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어떤 결과가 따르든 그에 대한 느낌은 모두가 다를 것이다. 자신의 삶은 본인이 개척해 가는 것이며 본인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탑을 쌓아나가면 된다. 물론 그 탑이 완벽한 유토피아일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린 사람이고, 그 존재 자체가 완벽하지 않을 테니까. 마히토가 이세계가 아닌 현실을 택했지만 가져온 작은 돌조각으로 남은 기억처럼 우린 굳이 이 이세계같은 영화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그저 이 작품을 보고 느꼈던 경험을 잊지 않으면서 각자만의 탑을 쌓아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결론
이 영화는 관객에게 불친절하고 난해한 작품인 것은 확실하다. 그것이 당연히 이 영화에 대한 강한 호불호와 혹평들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어릴 때 보아왔던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어른이 된 지금, 하나하나 곱씹어 생각해보면 더 난해하진 않았던가. 어릴 때 우린 그저 주인공의 판타지적 모험을 즐기기만 했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재밌었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 만화영화를 보아왔던 우리가 이젠 어른이 되어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거장이라면 뭔가 메세지가 있지 않을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이 내포하는 의미가 있진 않을까”, “어린아이들이 보는 영화가 아닌 어른이 보는 애니메이션 영화일 것이다” 등의 너무 어른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해석하려고만 하진 않았을까.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의 팬으로서, 나는 그의 작품을 나 개인적인 견해로 해석했고, 받은 감명을 이렇게 글로 써내었지만, 그저 오락적인 요소로 즐기기에도 충분히 괜찮은 판타지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명작의 기준은 관객의 경험에 따른 가치관이 다른 해석을 불러올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있어 분명 나와는 다른 해석을 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고작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해 내가 과대해석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난 이 작품은 충분히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굉장히 감명 깊게 본 영화라서 신나서 리뷰를 적다 보니 지금까지 쓴 블로그 포스팅 중 가장 긴 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영화에 대한 별점을 주자면 별 다섯 개 만점 중 네 개를 주고 싶다.